| r10 | ||
|---|---|---|
| r8 | 1 | [[분류:루이나]] |
| 2 | ||
| r9 | 3 | ||<-2><tablealign=right><tablewidth=470><tablebordercolor=#131230><bgcolor=#131230><color=#ffffff>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 [br] '''Westro Stadium Gas Explosion''' || |
| r8 | 4 | ||<-2> [[파일:웨스트로폭발사고.jpg|width=100%]] || |
| 5 | ||<width=30%><bgcolor=#f2f2f2> '''발생일''' || 2015년 5월 21일 || | |
| 6 | ||<bgcolor=#f2f2f2> '''발생 위치''' || 루이나 에포르 시 웨스트로 구 [br]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 || | |
| 7 | ||<bgcolor=#f2f2f2> '''유형''' || '''폭발 / 화재''' || | |
| 8 | ||<bgcolor=#f2f2f2> '''원인''' || 식음료 복합구역 하부 도시가스 배관의 장기 누출 및 조리기구 점화원 인화 || | |
| 9 | ||<|4><bgcolor=#f2f2f2> '''인명[br]피해''' ||<bgcolor=#f2f2f2> '''사망''' 122명 || | |
| 10 | ||<bgcolor=#f2f2f2> '''실종''' 18명 (전원 확인 종결) || | |
| 11 | ||<bgcolor=#f2f2f2> '''부상''' 512명 || | |
| 12 | ||<bgcolor=#f2f2f2> '''구조''' 구조대 직접 구조 214명 || | |
| 13 | ||<bgcolor=#f2f2f2> '''재산 피해''' || 직접 피해 약 1억 8,000만 루이나 달러 || | |
| 14 | ||<bgcolor=#f2f2f2> '''소실 면적''' || 약 14,600㎡ (D2·E2·E3 관람석 붕괴, 하부 콩코스 전소) || | |
| 15 | ||<bgcolor=#f2f2f2> '''진화율''' || 완료 (2015년 5월 22일 01시 55분 완진) || | |
| 16 | ||<|2><bgcolor=#f2f2f2> '''동원현황''' ||<bgcolor=#f2f2f2> '''인원''' 소방 780명, 경찰 620명, 구조대 340명, 군 400명 || | |
| 17 | ||<bgcolor=#f2f2f2> '''장비''' 소방차량 190대, 헬기 6대 || | |
| r1 (새 문서) | 18 | |
| 19 | [목차] | |
| 20 | [clearfix] | |
| 21 | ||
| 22 | == 개요 == | |
| r8 | 23 | '''웨스트로 경기장 폭발 참사'''(Westro Stadium Gas Explosion)는 2015년 5월 21일, 루이나 에포르 시 웨스트로 구에 위치한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 및 화재 참사이다. 오후 18시 47분경, 경기장 식음료 복합구역 하부 배관에서 장기간 누출되어 축적된 도시가스가 조리기구의 점화 불꽃에 인화하면서 폭발이 발생하였고, 뒤이은 화재와 관람석 붕괴로 122명이 사망하였다. |
| 24 | ||
| 25 | 사고 당시 경기장에서는 루이나 프로축구 1부 리그 15라운드 웨스트로 FC 대 알레티코 나보레의 지역 더비가 예정되어 있었으며, 수용 인원 45,000석 가운데 약 41,000명이 입장을 마친 상태였다. 폭발이 발생한 시각은 킥오프 13분 전으로, 관중이 매점과 화장실을 오가며 관람석 하부 콩코스의 인구 밀도가 하루 중 가장 높아지는 시점이었다. 폭발 지점이 관람석이 아니라 이 콩코스였다는 점이 인명 피해를 결정적으로 키운 요인으로 지목된다. | |
| 26 | ||
| 27 | 최초 폭발은 E3 관람석 하부 복도에서 발생했다. 폭압으로 복도 벽체와 천장이 붕괴되며 D3~E2 구간까지 충격파가 확산되었고, 이어 인접 배관과 배전 계통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면서 화염이 관람석 하부에서 상부로 수직 확산되었다. 붕괴로 인한 사망, 화상 및 연기 흡입에 의한 사망, 대피 과정의 압사가 동시에 발생하였다. | |
| 28 | ||
| 29 | 에포르 시 소방당국은 폭발 6분 후인 18시 53분 선착대를 현장에 투입하고 18시 58분 대응 2단계, 19시 14분 대응 3단계를 발령하였다. 화재는 발생 7시간 만인 익일 01시 55분에 완전히 진압되었으며, 잔해 수색은 사고 나흘째까지 이어졌다. | |
| 30 | ||
| 31 | 이 참사로 122명이 사망하고 512명이 부상하였다. 초기 실종자로 분류된 18명 가운데 9명은 붕괴 잔해에서 유해로 수습되어 사망자에 포함되었고, 나머지 9명은 생존이 확인되어 실종자 통계는 종결되었다. 시설 피해는 D2·E2·E3 관람석 3개 구역의 붕괴를 포함해 직접 피해액 약 1억 8,000만 루이나 달러로 집계되었으며, 철거 및 재건 비용을 포함한 총 피해액은 4억 루이나 달러를 넘어섰다. | |
| 32 | ||
| 33 | 웨스트로 참사는 루이나 현대사에서 단일 민간시설 사고로는 최대 규모의 인명 피해를 낸 사건이다. 그러나 이 참사가 루이나 정치사에서 갖는 의미는 사망자 수보다도, 사고의 원인이 시설 관리 주체의 과실을 넘어 [[리처드 콜턴]] 행정부의 정책 결정과 직접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사후에 드러난 데 있다. 참사는 콜턴 행정부 붕괴의 기점이 되었으며, 이후 루이나의 공공안전 법제와 재난 대응 체계는 전면 재편되었다. | |
| r1 (새 문서) | 34 | |
| 35 | == 전개 == | |
| 36 | === 사고 발생 3일 전 (2015년 5월 18일) === | |
| r8 | 37 | 2015년 5월 18일,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 시설유지관리팀 소속 기술 담당자 2명은 E3 구역 식음료 복합구역 하부 배관실에서 이상 징후를 확인하고 이를 내부 보고하였다. 보고서에는 지하 환기실에서 도시가스 부취제 특유의 냄새가 감지되며, 벽면에 결로가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
| 38 | ||
| 39 | 이는 배관 계통의 미세 누출을 의심할 수 있는 전형적 징후였다. 그러나 현장 판단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 하나 있었는데, 같은 배관실을 지나는 온수 공급관에서도 실제로 증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는 점이다. 눈에 보이는 증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스 누출을 가렸고, 이후 사흘간 모든 이상 징후는 "온수배관 문제"로 반복 분류되었다. | |
| 40 | ||
| 41 | [[루이나 체육시설운영공단]]은 기술진의 배관실 개방 점검 요청을 반려하였다. 반려 사유는 "정기점검 주기가 이미 지정되어 있으며, 경기 일정을 앞둔 해체 점검은 운영 부담을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내부 메신저 기록에는 운영국장이 기술지원반장에게 보낸 다음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 |
| 42 | ||
| 43 | > 지금 개방하면 구청장이 보고받는다. 연맹도 신경 쓰니 그냥 넘겨라. | |
| 44 | ||
| 45 | 국가안전감찰국(NSB)이나 에포르 시 재난예방국에는 이 징후에 관한 공식 보고가 접수되지 않았으며, 기록은 시설 내부 문서에만 남았다. | |
| 46 | ||
| 47 | 이 시기 루이나 정부는 [[리처드 콜턴]] 대통령이 2014년 발표한 「국민체육시설 현대화 사업」을 추진 중이었고,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은 그 제1호 사업지로 2015년 3월 재개장한 상태였다. 웨스트로 구와 루이나 프로축구연맹은 이 더비를 재개장 기념 흥행 경기로 홍보하고 있었다. 시설 운영 당국이 점검 요청을 반복적으로 기피한 배경에는 이러한 행정적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사후 감찰에서 확인되었다. | |
| 48 | ||
| r1 (새 문서) | 49 | === 사고 발생 2일 전 (2015년 5월 19일) === |
| r8 | 50 | 2015년 5월 19일, 웨스트로 시청 민원실과 에포르 시 재난예방국 상황실에 "웨스트로 종합경기장 일대에서 가스 냄새가 난다"는 시민 제보가 최소 17건 접수되었다. 민원 발생 지점은 경기장 동측 외벽 산책로, 지하주차장 진입로, D1 게이트 앞 보도 구간에 집중되어 있었다. 일부 민원인은 "달걀 썩는 냄새가 계속 난다", "배관이 새는 것 같다"는 구체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
| 51 | ||
| 52 | 재난예방국은 "경기장 조리시설 및 폐기물 적재소에서 발생하는 일반적 악취"로 추정된다는 내부 판단에 따라 현장 조사 없이 민원을 일괄 종결하였다. 민원 대응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수기 메모가 남아 있었으며, 이는 사후 감사에서 행정적 묵살의 정황으로 문제시되었다. | |
| 53 | ||
| 54 | > 대형 행사 앞두고 괜한 소동 벌이지 말라는 지침 있음. | |
| 55 | ||
| 56 | 같은 날 오후, 경기장 내부 공조기 2대에서 이상 진동이 감지되었고 E3 구역 가스 감지기 1기가 경보를 송출하였다. 시설운영공단은 이를 센서 자체 결함으로 결론짓고 추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해당 감지기는 사고 이후 현장 감식에서 정상 작동 상태였음이 확인되었으며, 폭발 직전까지의 로그에 농도 상승 추이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 |
| 57 | ||
| r1 (새 문서) | 58 | === 사고 발생 1일 전 (2015년 5월 20일) === |
| r8 | 59 | 2015년 5월 20일 오전, D2 구역 하부 주방에서 근무하던 조리원 1명이 두통과 구토를 호소하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동료가 발견해 구급대에 신고하였고, 이 직원은 산소 처치 후 외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
| 60 | ||
| 61 | 병원의 혈중 검사 결과는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이는 가스 누출과는 별개의 계통, 즉 조리 화구 배기 연도의 폐색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고 이후 확인되었다. 즉 사고 사흘 전부터 이 구역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스 계통이 동시에 이상을 보이고 있었으며, 둘 다 같은 이유로 방치되었다. | |
| 62 | ||
| 63 | 시설운영공단은 이 사건을 "조리 중 증기 흡입에 의한 단순 실신"으로 내부 처리하고, 환기 조치 외에 별도의 점검을 실시하지 않았다. 해당 공간은 이틀 전 가스 냄새가 보고된 지점과 동일한 구역이었으나, 두 사안이 연결되어 검토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 |
| 64 | ||
| 65 | 쓰러진 조리원은 이후 조사에서 "며칠 전부터 주방 안쪽에서 심한 냄새가 났고, 어지럼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다"고 진술하였다. 이 진술이 사고 이전에 공식 보고 체계에 반영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 |
| 66 | ||
| 67 | 상원 특별조사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이날을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로 규정하였다. | |
| 68 | ||
| r1 (새 문서) | 69 | === 사고 당일 (2015년 5월 21일) === |
| r8 | 70 | 2015년 5월 21일,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에서는 19시 킥오프로 웨스트로 FC 대 알레티코 나보레의 리그 15라운드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17시 게이트 개방 이후 관중 입장이 이어졌고, 18시 30분경 약 41,000명의 입장이 완료되었다. |
| 71 | ||
| 72 | 18시 20분, E3 구역 하부 배관실 가스 감지기가 경보 설정값인 25% LEL을 초과하였다. 그러나 관리 시스템은 이를 '외부 유입 가능성'으로 자동 분류하여 관리자 콘솔에 팝업 경고만 남겼고, 별도의 현장 출동 지령은 발생하지 않았다. 18시 41분 기록된 농도는 61% LEL로, 폭발 하한계의 절반을 넘어선 수치였다. | |
| 73 | ||
| 74 | 같은 시각대, 청소 용역 근로자 2명이 "통로 바닥 쪽에서 더운 바람이 올라온다", "냄새가 너무 심하다"고 인근 매점 직원에게 구두로 알렸다. 매점 측은 공조 팬을 일시 가동한 뒤 별다른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공조 팬의 가동은 결과적으로 축적된 가스를 인접 조리 구역까지 확산시킨 것으로 사후 분석되었다. | |
| 75 | ||
| 76 | 18시 44분, D2 구역 천장 배관에서 흰 증기가 분출되는 장면이 내부 CCTV에 포착되었다. 이는 온수 공급관에서 실제로 새어 나온 증기였으며, 현장 관계자는 이를 근거로 다시 한 번 "온수배관 문제"로 판단하고 점검반의 확인을 경기 시작 이후로 연기하였다. | |
| 77 | ||
| 78 | '''18시 47분''', D2 구역 조리대의 화구 점화 스파크가 축적된 가스에 인화하면서 E3 구역 하부 복도 전체를 따라 폭발이 발생하였다. 1차 폭압은 복도 벽체와 상부 슬래브를 붕괴시켰고, 충격파는 D3~E2 구간까지 확산되었다. 뒤이어 파손된 배관과 배전반에서 연쇄 폭발이 발생하며 화염이 관람석 하부에서 상부로 수직 확산되었다. | |
| 79 | ||
| 80 | 폭발과 동시에 주 통신선과 전광판 계통이 마비되어 비상 방송 지령이 전달되지 않았고, 현장 안전요원들이 육성으로 대피를 유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자식 회전문이 정전 시 잠금 상태로 고정되는 설계 결함 탓에 D 구역과 E 구역 출구 일부가 개방되지 않았고, 연기가 유입된 상층 콩코스에서는 군중 압박에 의한 압사 사고가 발생하였다. 일부 관중은 자력 탈출을 시도하다 상층부 펜스에서 추락하였다. | |
| 81 | ||
| 82 | 현장 상주 안전요원 340명과 배치 경찰 병력이 대피를 유도했으나, 옥내 소화전 계통이 폭발로 손상되고 방화 셔터가 작동하지 않아 화염 확산을 차단하지 못했다. 화재는 18시 55분경 서측 외벽으로 번졌다. | |
| 83 | ||
| 84 | 18시 53분, 에포르 시 소방당국 선착대가 현장에 도착하였다. 18시 58분 대응 2단계, 19시 14분 대응 3단계가 발령되어 최종적으로 소방 780명과 차량 190대, 헬기 6대가 투입되었다. 그러나 경기장 주변 도로가 대피 인파로 완전히 막히면서 후속 부대의 진입이 지연되었고, 화점이 3개 이상으로 분산되어 진화에 어려움이 있었다. | |
| 85 | ||
| 86 | 화재는 발생 7시간 만인 익일 01시 55분에 완전히 진압되었다. 잔해 수색은 사고 나흘째까지 계속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초기 실종자 18명 중 9명이 유해로 수습되었다. | |
| r1 (새 문서) | 87 | |
| 88 | == 피해 상황 == | |
| 89 | === 인명 피해 === | |
| r8 | 90 | 공식 집계 기준 사망자는 122명, 부상자는 512명이다. 사망자 가운데 77명은 현장에서 즉사하였고, 45명은 화상·연기 흡입·압박에 의한 손상으로 병원 이송 후 사망하였다. 사망 원인별로는 폭발 및 구조물 붕괴에 의한 외상이 61명, 화상 및 연기 흡입이 39명, 대피 과정의 압사가 22명이다. |
| 91 | ||
| 92 | 초기 실종자로 분류된 18명 중 9명은 E3 구역 하부 철골 잔해에서 유해로 수습되어 사망자 통계에 포함되었으며, 나머지 9명은 병원 이송 과정의 신원 확인 누락으로 밝혀져 생존이 확인되었다. 신원 미확인 사망자에 대한 DNA 감식은 국립법의학원에서 진행되어 사고 3주 만에 전원 신원이 확정되었다. | |
| 93 | ||
| 94 | 부상자 512명 중 118명은 중증 화상 및 다발성 외상 환자로 분류되어 전국 7개 권역 외상센터에 분산 이송되었다. 나머지는 연기 흡입, 골절, 타박상 등이었다. | |
| 95 | ||
| 96 | 생존자 및 유족 다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였으며, 사고 두 달 뒤 보건부는 웨스트로 참사 심리지원센터를 에포르에 설치하였다. | |
| 97 | ||
| r1 (새 문서) | 98 | === 시설 및 재산 피해 === |
| r8 | 99 | 폭발과 화재로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의 D2·E2·E3 관람석 3개 구역이 붕괴하였고, 하부 콩코스 전 구간이 전소되었다. 상층부 철골 트러스 일부가 좌굴되어 잔여 구조물 전체가 사용 불능 판정을 받았으며, 전력·공조·소방 계통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하 설비층은 배관 파열로 인한 침수 피해까지 겹쳤다. |
| 100 | ||
| 101 | 루이나 국가재난관리청(NEMA)은 사고 열흘 뒤 발표한 1차 피해 분석에서 직접 재산 피해액을 약 1억 8,000만 루이나 달러로 추정하였고, 잔여 구조물 철거와 재건 비용을 포함할 경우 총 피해액이 4억 루이나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 |
| 102 | ||
| 103 | 경기장은 2016년 1월 완전 철거되었으며, 부지에는 2019년 웨스트로 참사 추모공원이 조성되었다. | |
| r1 (새 문서) | 104 | |
| 105 | == 정부 대응 == | |
| r8 | 106 | 루이나 정부는 참사 직후부터 사후 대책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대응 실패와 책임 회피로 국민적 비판을 받았다. |
| 107 | ||
| 108 |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은 초동 대응의 성격이었다. 경기가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었기 때문에 폭발 장면은 발생과 동시에 방영되었고,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는 18시 52분에 이미 상황을 인지하였다. 즉 정부는 사고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알고도 이를 어떻게 분류할지에서 실패했다. 대통령실은 이를 '지방자치단체 소관 시설 사고'로 분류하였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폭발 71분 뒤인 19시 58분에야 가동되었다. 이 71분은 이후 청문회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추궁된 시간이 되었다. | |
| 109 | ||
| 110 | 사고 당일 밤, [[리처드 콜턴]] 대통령은 현장을 방문하지 않았고 내무장관을 통해 "불행한 사고로 유감"이라는 짧은 논평만을 전달하였다. 그날 저녁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되어 있던 루이나 항공 창립 50주년 기념 만찬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만찬 사진이 이튿날 보도되면서 여론은 격렬하게 반발하였다. | |
| 111 | ||
| 112 | 사고 이틀 후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내무장관은 "모든 조치는 매뉴얼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예견하기 어려운 사고였다고 보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사고 사흘 전부터 이어진 경고가 언론 보도로 확인되면서 이 발언은 곧바로 논란이 되었다. | |
| 113 | ||
| 114 | 국가안전감찰국(NSB)은 사고 5일 후에야 공식 감찰팀을 파견하였고, 감식 보고서 초안은 3주 후에야 공표되었다. 그 사이 정부는 웨스트로 구와 시설운영공단의 관리 책임을 반복해서 강조하였다. | |
| 115 | ||
| 116 | 유족과 생존자에 대한 대응은 특히 큰 반발을 불렀다. 사고 10일이 지나도록 정부 차원의 공식 사과나 보상 절차 지침이 발표되지 않았고, 유족들은 민간 변호인단을 조직해 국가와 에포르시, 시설운영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 |
| 117 | ||
| 118 | 이후 청문회에서 일부 고위 공직자가 "그 정도 규모의 폭발은 상정하지 못했다", "일정상 현장 방문이 물리적으로 어려웠다"고 발언하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확산되었다. 콜턴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고 직전 58퍼센트에서 6주 만에 31퍼센트로, 27퍼센트포인트 하락하였다. | |
| r1 (새 문서) | 119 | |
| 120 | == 의회의 대응 == | |
| r8 | 121 | 참사 직후 루이나 의회는 여야 합의로 상원 행정안전위원회 특별 청문회를 소집하였다. 사고 12일 뒤인 2015년 6월 2일 벨포르 상원의사당에서 열린 첫 청문회에는 에포르 시장, 체육시설운영공단 이사장, 내무장관,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이 증인으로 출석하였다. |
| 122 | ||
| 123 | 청문회 위원들은 사고 사흘 전부터의 기술진 내부 보고, 시민 민원 17건, 조리원 중독 사건, 폭발 27분 전의 감지기 경보 초과 기록이 모두 존재했음에도 어느 단계에서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위를 집중 추궁하였다.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중앙정부와 대통령실의 대응을 강하게 질타하였다. | |
| 124 | ||
| 125 | 당시 대통령 [[리처드 콜턴]]은 보수 성향의 [[민주공화당(루이나)|민주공화당]] 소속으로, 사고 후 공식 성명이나 현장 방문 없이 내무장관을 통한 유감 표명만을 내놓은 상태였다. 사회민주당은 연일 성명을 발표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 |
| 126 | ||
| 127 | > 대통령은 국민이 불타는 경기장에서 죽어가던 그 순간에도 만찬장에 앉아 있었다. 이것이 국가 원수의 자세인가. 콜턴 행정부는 실패한 국가 책임의 표본이다. | |
| 128 | > ― 사회민주당 원내대표 (2015년 5월 23일 기자회견) | |
| 129 | ||
| 130 | 청문회의 성격이 결정적으로 바뀐 것은 2015년 7월 14일이었다. 이날 상원 특별조사위원회는 대통령실 정책조정비서관실이 2014년 12월 국가안전감찰국의 안전실태 중간보고에 대해 "재개장 이후 순차 시행"으로 회신한 문건을 공개하였다. 문건 하단에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보고 표시가 남아 있었다. 그 전까지 비판의 초점이 대통령의 사후 대응이었다면, 이후로는 사전 인지 문제로 이동하였다. | |
| 131 | ||
| 132 | 상원 특별조사위원회 최종보고서는 참사의 원인을 시설 관리 주체의 과실, 감독기관의 기능 부전, 그리고 중앙정부의 정책 결정 세 층위로 나누어 기술하고,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 |
| 133 | ||
| 134 | > 이 참사에는 사고를 일으킨 사람과 사고를 가능하게 만든 사람이 따로 있다. 전자에 대한 처벌은 사법의 몫이나, 후자에 대한 판단은 이 위원회와 유권자의 몫이다. | |
| 135 | ||
| 136 | 한편 사회민주당이 예고한 대통령 탄핵소추는 성립하지 않았다. 그 경위는 아래 「탄핵 운동의 좌초」 항목에서 서술한다. | |
| r1 (새 문서) | 137 | |
| 138 | == 수사 상황 == | |
| r8 | 139 | 사고 직후 [[광역수사국]](MIA)을 주무로, 소방청 화재조사과와 루이나 가스안전관리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합동 수사본부를 구성하였다. AFT(주류·화기·담배 규제국) 조사관 12명은 방화 및 폭발물 사용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해 초기 72시간 동안 현장에 투입되었으며, 5월 24일 인위적 폭발물 흔적이 없다는 판정과 함께 철수하였다. |
| 140 | ||
| 141 | 현장 감식 결과, 폭발 지점 하부에서 1976년 준공 당시 매설된 강관이 이음부 부식으로 장기간 가스를 누출해온 사실이 확인되었다. 누출 가스는 환기가 차단된 배관실과 하부 콩코스에 축적되었고, 5월 21일 조리대 점화원에 인화한 것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 |
| 142 | ||
| 143 | 5월 23일 에포르 시청과 웨스트로구청, 시설운영공단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작성된 가스 배관 점검 보고서 상당수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 실제로는 압력 이상과 누출 경고가 최소 4회 발생했음에도, 공식 보고서에는 모두 '이상 없음'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 |
| 144 | ||
| 145 | 점검을 수행한 민간업체 세프코 인더스트리얼은 조작 사실을 인정하였다. 세프코는 2013년 「공공시설 규제합리화 종합대책」으로 신설된 민간 지정업체 제도에 따라 2014년 지정된 업체였으며, 진단 대상 시설의 발주처인 시설운영공단과 직접 계약 관계에 있었다. | |
| 146 | ||
| 147 | 5월 28일 시설운영공단 부이사장 마크 벨로스와 에포르시 도시안전국 공무원 3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 및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로 입건되었다. 6월 1일부터는 감사원이 합류해 공공기관과 민간 지정업체 간 유착 및 청탁 정황에 대한 별도 수사가 진행되었다. | |
| 148 | ||
| 149 | 수사본부는 초기 72시간 만에 외부 세력의 개입이나 테러 가능성을 명확히 배제하고, 참사의 성격을 "누적된 관리 부실과 제도적 감독 공백에 의한 전형적 인재"로 규정하였다. | |
| r1 (새 문서) | 150 | |
| 151 | == 재판 == | |
| r8 | 152 | === 형사 재판 === |
| 153 | 2015년 8월, 시설운영공단 관계자 4명, 에포르시 공무원 3명, 세프코 인더스트리얼 임직원 3명 등 총 10명이 기소되었다. 적용 법조는 업무상과실치사상,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배임수재였다. | |
| 154 | ||
| 155 | 2016년 11월 24일 벨포르지방법원 선고 결과는 다음과 같다. | |
| 156 | ||
| 157 | || '''피고인''' || '''혐의''' || '''1심''' || '''확정''' || | |
| 158 | || 마크 벨로스 (공단 부이사장) || 업무상과실치사상·허위공문서작성·배임수재 || 징역 7년 || 징역 5년 || | |
| 159 | || 공단 운영국장 || 업무상과실치사상·허위공문서작성 || 징역 5년 || 징역 4년 || | |
| 160 | || 시설관리팀장 || 업무상과실치사상 || 징역 3년 || 징역 2년 6월 || | |
| 161 | || 도시안전국 공무원 3인 || 직무유기·허위공문서작성 || 징역 1~3년 || 2인 실형, 1인 집행유예 || | |
| 162 | || 세프코 임직원 3인 || 업무상과실치사상·배임증재 || 징역 1년 6월~3년 || 1인 실형, 2인 집행유예 || | |
| 163 | ||
| 164 | 재판부는 "사고는 예견 가능했고, 막을 수 있었다"고 전제하면서도, 업무상과실치사상의 법정형 상한이 5년임을 들어 경합가중을 적용하더라도 선고 가능한 형에 한계가 있음을 명시하였다. | |
| 165 | ||
| r1 (새 문서) | 166 | {{{#!folding [ 판결문 발췌 펼치기 · 접기 ] |
| r8 | 167 | >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인식하지 못한 것은 위험 그 자체가 아니었다. 위험은 세 차례에 걸쳐 문서로, 민원으로, 사람의 몸으로 보고되었다. 피고인들이 인식하지 못한 것은 그 보고를 자신이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
| 168 | > | |
| 169 | > 본 재판부는 이 사건이 개인의 태만보다는 책임이 아무 곳에도 귀속되지 않도록 설계된 체계의 문제에 가깝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체계를 심판하는 것은 이 법정의 권한이 아니며, 그 권한을 가진 곳은 따로 있다. | |
| 170 | > | |
| 171 | > 아울러 본 재판부는, 122명의 사망에 대하여 현행법이 허용하는 최고형이 이 정도에 그친다는 사실을 기록에 남긴다. 이는 양형의 문제가 아니라 입법의 문제이다. | |
| 172 | > | |
| 173 | > ― 2016년 11월 24일 선고, 벨포르지방법원 형사합의12부 | |
| r1 (새 문서) | 174 | }}} |
| r8 | 175 | |
| 176 | 판결 직후 여론은 다시 격앙되었다. 「122명의 대가, 징역 7년」이라는 헤드라인이 주요 일간지 1면에 실렸고, 해산 절차를 밟고 있던 웨스트로 참사 유족회는 활동을 재개하였다. 재판부가 판결문에 남긴 입법 촉구는 이듬해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 제정 논의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 |
| 177 | ||
| 178 | 항소심은 2017년 6월, 대법원 확정은 2018년 4월에 이루어졌다. | |
| 179 | ||
| 180 | === 민사 재판 === | |
| 181 | 유족 및 생존자 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벨포르지방법원은 2018년 9월, 국가와 에포르시, 시설운영공단의 공동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총 1억 9,000만 루이나 달러의 지급을 명하였다. 이는 루이나 헌정사상 단일 사건 기준 최대 규모의 국가배상이다. | |
| 182 | ||
| 183 | 재판부는 국가의 책임 근거로 시설 관리 감독의 해태뿐 아니라, 2013년 규제 완화로 인해 감독 기능 자체가 형해화된 점을 명시적으로 적시하였다. [[사회민주당(루이나)|사회민주당]]과 진보 성향 언론은 이를 "사법부가 정책 결정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로 평가하였고, 보수 언론은 "행정의 정책 재량을 사법이 사후에 심판한 위험한 선례"라며 반발하였다. | |
| r1 (새 문서) | 184 | |
| 185 | == 시민사회의 반응 == | |
| 186 | === 전국적 시위와 추모 물결 === | |
| r8 | 187 | 사고 이틀 뒤인 5월 23일부터 에포르를 시작으로 벨포르, 크레테, 사보레, 롱비치 등 30여 개 도시에서 추모 집회와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6월 1일 벨포르 도심에서 열린 '122개의 촛불 행진'에는 약 12만 명이 운집하였으며, 이는 루이나 현대사에서 손꼽히는 대규모 시민 집회로 기록되었다. |
| 188 | ||
| r1 (새 문서) | 189 | === 유족회의 결성과 집단 행동 === |
| r8 | 190 | 6월 19일, 유족과 피해자 가족들은 '웨스트로 참사 유족회'를 결성하고 정부의 직접 사과와 책임자 문책,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설치를 요구하였다. 유족회는 콜턴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구했으나, 대통령은 "사법절차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입장을 고수하였다. |
| 191 | ||
| 192 | 6월 27일, 유족회는 에포르에서 합동 장례를 마친 뒤 벨포르 대통령궁 앞 광장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돌입하였다. 이들은 "자식의 주검 앞에 국가가 없었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책임자 처벌, 배상 대책을 요구하였다. | |
| 193 | ||
| 194 | 농성은 41일간 이어졌으며, 그중 유족 대표 9명과 연대 참가자들이 단식에 참여하였다. 농성 기간 중 3명이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되었다. | |
| 195 | ||
| 196 | 이 농성에는 시민·학생·종교계 인사가 잇따라 동참하였다. 당시 대학 재학 중이던 [[루스탈지아 그래이]]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2010년 가을 [[루이나 국립대학교]]에 입학한 뒤 병역을 이행하고 복학한 상태였으며, 12일간 단식에 참여하고 언론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 |
| 197 | ||
| 198 | > 국가는 '사고'라는 말로 이 비극을 덮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건 사고가 아니라 죽음을 외면한 체제 그 자체다. 우리는 그 무감각에 끝까지 저항해야 한다. | |
| 199 | ||
| 200 | 루스탈지아의 단식 참여는 훗날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일화로 남았다. 그는 2021년 취임 연설에서 이 시기를 직접 거론하며 "그날의 분노와 부끄러움이 나를 이 자리에 서게 했다"고 말하였다. | |
| 201 | ||
| 202 | 콜턴 대통령은 농성 41일간 끝내 유족과의 면담을 거부하였다. | |
| 203 | ||
| 204 | {{{#!folding [ 유족회 성명 「죽음을 덮지 마십시오」 펼치기 · 접기 ] | |
| 205 | > 우리는 지금, 불타버린 관람석 위에 말을 얹고 있습니다. | |
| 206 | > 그 말은 "사고였습니다"라는 한마디입니다. | |
| 207 | > 그리고 그 말은 너무나 조용히, 너무나 단호하게,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덮고 있습니다. | |
| 208 | > | |
| 209 | > 122명이 사망했습니다. | |
| 210 | > 그들 중 일부는 아이였고, 일부는 첫 직장에 다니던 청년이었으며, 어떤 이는 평생 처음으로 경기장을 찾은 사람이었습니다. | |
| 211 | > | |
| 212 | > 3일 전부터 냄새가 났습니다. | |
| 213 | > 2일 전,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 |
| 214 | > 1일 전,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 |
| 215 | > 당일, 굉음이 울렸고 | |
| 216 | > 지금은 고요함만이 남았습니다. | |
| 217 | > | |
| 218 | > 그 사이, 국가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 |
| 219 | > 책임자는 "확인 중"이라는 말만을 반복했고, 대통령은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 |
| 220 | > 그것이 다였습니다. | |
| 221 | > | |
| 222 | > 국가가 죽음을 덮을 때, 국민은 그것을 꺼내 보여줘야 합니다. | |
| 223 | > 죽음을 덮지 마십시오. | |
| 224 | >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 |
| 225 | > | |
| 226 | > ― 웨스트로 참사 유족회, 2015년 6월 27일 | |
| r1 (새 문서) | 227 | }}} |
| r8 | 228 | |
| r1 (새 문서) | 229 | === 시민사회단체와 지식인 연대 === |
| r8 | 230 | 전국 시민단체 250여 개가 연대한 '국민안전 공동행동'은 사고 3주 후 「국가적 직무유기에 대한 단죄를 요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였다. |
| 231 | ||
| 232 | > 가스 냄새 민원을 수차례 묵살하고, 조리원이 중독으로 쓰러진 상황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정부는 명백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정권은 국민의 생명 앞에 눈을 감았고, 그 무능과 외면이 12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 |
| 233 | ||
| 234 | 이어 벨포르대학, 나보레공과대학, 루이나 국립대학교 등 14개 대학 교수단이 연서명을 통해 국정 쇄신과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 이행을 촉구하였다. | |
| 235 | ||
| 236 | === 탄핵 운동의 좌초 === | |
| 237 | 6월 말부터 벨포르를 중심으로 탄핵 요구가 등장하였다. 사회민주당과 진보 성향 시민단체가 연합해 조직한 '122 행동연합'은 7월 1일 공식적으로 탄핵 운동을 개시하였고, 온라인 청원에는 열흘 만에 100만 명 이상이 서명하였다. | |
| 238 | ||
| 239 | 그러나 탄핵소추안은 발의되지 못했다. 루이나 헌법은 탄핵소추의 요건을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 또는 법률을 위배한 때'로 한정하고 있는데, 의회 법제실은 2015년 8월 대응 실패와 정책 판단의 오류는 그 자체로 위법 행위에 해당하지 않으며, 참사만을 근거로 한 소추는 하원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것이라는 검토 의견을 제출하였다. | |
| 240 | ||
| 241 | 야당 지도부는 이 판단을 수용하고 소추 대신 특별검사 도입과 2016년 선거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전환하였다. 이 결정은 당시 시민사회 일부로부터 '정치적 계산'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콜턴에 대한 심판은 사법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이루어졌다. | |
| 242 | ||
| 243 | 한편 이 경험은 재난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 법제화 논의의 출발점이 되었으며, 2018년 「중대재해 처벌에 관한 법률」과 2019년 「국가위기관리 기본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 |
| 244 | ||
| r1 (새 문서) | 245 | === 대중문화와 온라인 반응 === |
| r8 | 246 | SNS에서는 '#하야하라콜턴', '#122개의불꽃', '#웨스트로를기억하라' 등의 해시태그가 연일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일부 음악인과 예술인들은 추모곡과 공연을 통해 참여하였으며, 사고 1주기에 발표된 합동 추모 음반 《122》는 그해 최다 판매 음반이 되었다. |
| 247 | ||
| 248 | == 리처드 콜턴 행정부의 책임 == | |
| 249 | 웨스트로 참사는 발생 직후 시설 관리 주체의 과실 사건으로 다루어졌으나, 2015년 7월 청문회에서 대통령실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고의 원인이 [[리처드 콜턴]] 행정부의 정책 결정에 직접 닿아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후 참사의 성격 규정은 '관리 부실'에서 '정책 실패'로 이동하였다. | |
| 250 | ||
| 251 | === 규제 완화: 2013년 공공시설 규제합리화 종합대책 === | |
| 252 | 콜턴 행정부는 취임 두 달 만인 2013년 3월 「공공시설 규제합리화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이 대책은 연면적 3만 제곱미터 이상 다중이용시설의 가스공급설비 정밀안전진단 주기를 2년에서 4년으로 완화하고, 진단 주체를 루이나 가스안전관리원 독점에서 민간 지정업체 경쟁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 |
| 253 | ||
| 254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 |
| 255 | '''공공시설 규제합리화 종합대책(2013. 3. 14. 국무회의 의결) 중''' | |
| 256 | ||
| 257 | 3-나. 다중이용시설 안전규제 정비 | |
| 258 | (1) 가스공급설비 정밀안전진단 주기: 2년 → 4년 | |
| 259 | (2) 진단기관 지정제 도입: 국가기관 독점 → 민간 지정업체 경쟁 체제 | |
| 260 | (3) 기대효과: 연간 규제비용 약 4,100만 루이나 달러 절감 | |
| 261 | }}} | |
| 262 | ||
| 263 |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의 지하 가스배관은 이 개정에 따라 2013년 진단 이후 차기 진단이 2017년으로 미뤄졌다. 사고 시점에 이 배관은 법적으로 진단 대상이 아니었다. | |
| 264 | ||
| 265 | 점검 조작 혐의로 기소된 세프코 인더스트리얼은 이 제도로 신설된 민간 지정업체였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소관 부처가 "민간 지정업체는 발주처와의 계약 관계상 독립성 확보가 어렵다"는 의견을 제출하였으나, 회의록상 해당 의견은 부기 없이 종결되었다. | |
| 266 | ||
| 267 | === 사업 일정: 국민체육시설 현대화 사업 === | |
| 268 | 2014년 2월, 콜턴 대통령은 노후 체육시설 34곳을 대상으로 한 총사업비 12억 루이나 달러 규모의 「국민체육시설 현대화 사업」을 발표하고,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을 제1호 사업지로 지정하였다. 사업 성과지표에는 '재개장 일정 준수율'이 40퍼센트 가중치로 포함되어 있었다. | |
| 269 | ||
| 270 | 문제가 된 것은 2014년 6월의 사업비 재조정이었다. 최초 설계에는 1976년 준공 당시 매설된 지하 가스배관 전 구간 교체(약 2,300만 루이나 달러)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재조정 과정에서 이 항목은 관중석 증설과 외장 개선으로 재배정되었고 배관 교체는 2018년 예정의 2차 사업으로 이월되었다. | |
| 271 | ||
| 272 | '''2015년 5월 21일 폭발이 발생한 E3 구역 하부 배관은 이 이월된 미교체 구간이었다.''' | |
| 273 | ||
| 274 | 사업비 재조정 문건에는 다음 검토 의견이 부기되어 있었다. | |
| 275 | ||
| 276 | > 배관 교체 시 공기 7~9개월 추가 소요 예상. 2015년 상반기 재개장 목표와 양립 불가. | |
| 277 | > 외장·관중석 항목은 가시적 성과 효과가 크므로 우선순위 상향 권고. | |
| 278 | > ― 대통령실 정책조정비서관실 검토의견 (2014년 6월 3일) | |
| 279 | ||
| 280 | 경기장은 예정대로 2015년 3월 재개장하였고, 콜턴 대통령은 재개장식에 직접 참석하였다. 사고는 그로부터 두 달 뒤에 일어났다. | |
| 281 | ||
| 282 | === 인사: 감독 체계의 무력화 === | |
| 283 | 사고 당시 [[루이나 체육시설운영공단]] 이사장은 2012년 콜턴 대선캠프 조직본부장 출신이었고, 부이사장 마크 벨로스는 현대화 사업 발표 직후인 2014년 3월 임명되었다. 감독기관인 국가안전감찰국(NSB) 국장 역시 같은 해 교체되었다. | |
| 284 | ||
| 285 | 이 구조에서 시설 기술진의 내부 보고는 공단 운영국 단계에서 차단되었고, NSB에는 사고 이전까지 웨스트로 경기장 관련 보고가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상원 특별조사위원회는 최종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
| 286 | ||
| 287 | > 경고를 전달할 조직은 있었으나, 경고를 전달할 유인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 | |
| 288 | ||
| 289 | === 사전 경고의 묵살 === | |
| 290 | 2014년 11월, 국가안전감찰국은 「현대화 사업 대상 시설 지하설비 안전실태 중간보고」를 통해 대상 시설 34곳 중 12곳에서 가스배관 부식과 이음부 이완이 확인되었으며 재개장 전 정밀진단이 필요하다고 보고하였다. 웨스트로 제1종합경기장은 이 12곳에 포함되어 있었다. | |
| 291 | ||
| 292 | 대통령실 정책조정비서관실은 2014년 12월 이 보고를 '사업 일정 리스크'로 분류하고 "재개장 이후 순차 시행"으로 회신하였다. 해당 회신 문건은 2015년 7월 14일 청문회에서 공개되었으며, 문건 하단에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보고 표시가 남아 있었다. | |
| 293 | ||
| 294 | 이 문건의 공개는 여론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바꾸었다. 그 전까지 비판의 초점은 대통령의 사후 대응이었으나, 이후로는 '알고도 미뤘다'는 사전 인지 문제로 이동하였다. | |
| 295 | ||
| 296 | === 사후 책임: 국가정보국의 국내 동원 === | |
| 297 | 콜턴 행정부의 두 번째 책임은 참사 자체가 아니라 참사 이후의 대응에서 발생하였다. | |
| 298 | ||
| 299 | [[루이나 국가정보국]](NIA)은 1978년 군정기 국내 사찰 전용 전력으로 인해, 1980년 헌정 회복 이후 「국가정보국법」에 따라 국내 정보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국내 정보와 방첩은 [[광역수사국]](MIA)의 배타적 소관이다. | |
| 300 | ||
| 301 | 그럼에도 2015년 6월부터 NIA 심리전 부서가 국내 여론공작에 투입된 사실이 2017년 내부 고발과 문건 유출로 확인되었다. 이는 실정법 위반인 동시에 1980년 정보기관 개혁의 근간을 무너뜨린 헌정 사안으로 규정되었다. 구체적 내용은 아래 「논란」 항목에서 서술한다. | |
| 302 | ||
| 303 | 참사에 대한 대통령의 책임이 정치적·도의적 영역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이 사안은 명백한 위법 행위였다. 콜턴이 결국 형사 절차에 회부된 것은 122명의 죽음 때문이 아니라, 그 죽음의 책임을 피하려 한 방식 때문이었다. | |
| 304 | ||
| 305 | === 법적 책임과 정치적 책임의 분리 === | |
| 306 | 2017년 3월 출범한 웨스트로 참사 특별검사팀은 콜턴을 참사 자체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으로는 기소하지 못하였다. 대통령의 정책 결정과 개별 시설의 사고 사이에 형법상 상당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
| 307 | ||
| 308 | 특검은 대신 2017년 11월 「국가정보국법」 위반 교사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콜턴을 기소하였고, 2019년 2월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되었다. | |
| 309 | ||
| 310 | [[민주공화당(루이나)|민주공화당]]은 2016년 선거에서 참패하였으며, 콜턴은 2017년 1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였다. 재임 기간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이다. | |
| 311 | ||
| 312 | === 반론 === | |
| 313 | 콜턴 측과 민주공화당은 다음과 같이 반박하였다. | |
| 314 | ||
| 315 | * 규제 완화 논의는 전임 행정부에서 시작되었으며, 2013년 대책은 그 연장선에 있다. | |
| 316 | * 배관 교체 이월은 사업단의 실무 판단이며, 대통령이 개별 시설의 설비 항목을 인지할 수 없다. | |
| 317 | * 2014년 12월 회신은 비서관실 전결 사항으로 대통령 결재 문서가 아니다. | |
| 318 | * 사고의 직접 원인은 민간업체의 점검 조작이며, 이는 어떤 제도 아래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 |
| 319 | ||
| 320 | 이 중 세 번째 주장은 청문회에서 문건 하단의 수석비서관회의 보고 표시가 확인되며 신빙성을 잃었다. 첫 번째와 네 번째 주장은 이후에도 콜턴 지지층과 일부 행정학계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 |
| r1 (새 문서) | 321 | |
| 322 | == 음모론 == | |
| r8 | 323 | * 일부 극우 커뮤니티는 이 참사가 정부의 도시 재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고의로 일어났다고 주장하였다. 사고 이후 주변 부지가 빠르게 매입된 점을 근거로 들었다. |
| 324 | * 경기장 하부에 비밀 군사시설이 있었으며 폭발은 이를 은폐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고 이후 현장 주변이 나흘간 봉쇄된 점이 근거로 인용되었다. | |
| 325 | * 사고 직전 인근에 드론이 저공비행했다는 목격담이 확산되었다. 해당 드론은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 |
| 326 | * 경기장 운영 주체가 누적 적자를 면하기 위해 시설을 고의로 포기했다는 보험사기설이 제기되었다. | |
| 327 | * 한 방송사 내부 문건이라며 "사고 발생 시 관련 보도를 천재지변으로 통일하라"는 지시가 담긴 문서가 유포되었다. 해당 문서는 이후 조작으로 판명되었으나, 콜턴 행정부의 실제 언론 통제 정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남았다. | |
| 328 | * 사고 당일 대통령이 벨포르에 체류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한 사전인지설이 외국 음모론 사이트를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대통령 일정은 사전에 공개되어 있었다. | |
| r1 (새 문서) | 329 | |
| 330 | == 논란 == | |
| r8 | 331 | === 여론 통제와 언론 압박 === |
| 332 | 참사 이후 콜턴 행정부는 조직적인 여론 관리에 착수하였다. 사고 초기 대통령 비서실은 "정보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라"는 명분으로 주요 일간지 편집국에 사전 조율 지침을 전달하였고, 문화통신부 고위 관계자들이 비공식 접촉을 통해 다수 언론사에 압박을 가한 정황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드러났다. | |
| 333 | ||
| 334 | 여기까지는 정권의 통상적 언론 관리 범위에 속하는 문제였다. 그러나 이후 밝혀진 사실은 성격이 달랐다. | |
| 335 | ||
| 336 | === 국가정보국의 위법한 국내 공작 === | |
| 337 | 2017년 유출된 문건에 따르면, 2015년 6월 대통령실은 국내 여론공작을 [[광역수사국]](MIA)이 아니라 [[루이나 국가정보국]](NIA) 심리전 부서에 지시하였다. NIA는 1980년 정보기관 개혁 이후 「국가정보국법」에 의해 국내 정보활동이 전면 금지된 기관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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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9 | 작전명은 '청백(淸白) 3호 작전'이었으며, 목표는 참사 책임론의 초점을 정권에서 개인으로 이전시키는 것이었다. 내부 분석 문건에는 다음 문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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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1 | > 비판의 중심을 특정 개인으로 옮기면 정권 책임론이 약화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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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3 | 지목된 개인은 당시 민간인 신분으로 유족 농성에 참여하던 [[루스탈지아 그래이]]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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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5 | === 루스탈지아 그래이에 대한 인격 공격 === | |
| 346 | 사고 닷새 뒤부터 주요 보수 언론에는 "시민단체 뒤에 숨은 정권 흔들기", "정치적 선동인가 진심인가" 등의 제목을 단 부정적 논평이 연이어 게재되었다. 대통령실은 우파 성향 온라인 채널들과 비공식적으로 협력하여 루스탈지아를 겨냥한 콘텐츠를 유통시켰고, 이들 채널은 "죽음을 이용한 정치 브로커", "배후에 급진 좌파가 있다"는 주장을 담은 영상 수십 편을 제작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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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8 | 공작의 중심에는 루스탈지아의 사생활을 겨냥한 허위 루머가 있었다. 어떠한 증거나 출처도 없는 익명의 주장이었으나, 온라인 커뮤니티와 일부 언론 칼럼을 통해 기정사실처럼 반복 보도되었다. 유출된 대통령실 문건에는 "청렴한 이미지를 무너뜨릴 사생활 키워드를 조속히 발굴하라", "문란함·위선 프레임을 중심에 둘 것"이라는 지시사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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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0 | 해당 루머는 전부 허위로 판명되었다. 루스탈지아는 이를 두고 "죽은 이의 슬픔을 함께 나눈 대가로 받은 가장 비열한 칼날"이라고 표현하였다. 이후 허위사실 유포자 23명이 기소되어 일부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이 사건은 루이나 정치사에서 국가기관에 의한 조직적 인격살인 시도로 기록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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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2 | === 「만찬은 계속된다」 만평 사건 === | |
| 353 | 2015년 6월 11일, 시사 풍자 주간지 《이브닝 포스트》는 정치 만평가 레온 카스티유의 한 컷 만평 「만찬은 계속된다」를 표지에 실었다. | |
| r10 | 354 | [[파일:웨스트로만평.png|width=70%]] |
| r8 | 355 | 그림의 배경은 만찬장이었다. 그을린 관람석 잔해가 식탁보처럼 덮인 긴 테이블 상석에, 냅킨을 턱에 끼운 콜턴이 나이프와 포크를 세워 들고 앉아 있다. 접시 위에는 숯처럼 탄 사람의 형체가 놓여 있고, 대통령은 그 갈비뼈 사이로 포크를 밀어 넣는 중이다. 테이블 중앙 케이크에는 초 122개가 꽂혀 있으며, 촛농이 접시 밖으로 흘러내려 바닥에 고여 있다. 웨이터 복장의 내무장관이 와인을 따르는데, 병 라벨에는 '유감(遺憾) 1976'이라 적혀 있다. 1976년은 폭발한 배관이 매설된 해이자 경기장 준공 연도다. 테이블 밑에서는 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무릎으로 기어다니며 떨어진 뼛조각을 줍고 있고, 벽에 걸린 루이나 국기 자락에는 입가를 닦은 기름 자국이 번져 있다. 대통령의 말풍선은 한마디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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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7 | > 더 없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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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9 | 왼쪽 아래 여백에는 작가의 서명 대신 다음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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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1 | > 본지는 이 그림이 과장이기를 바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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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3 | 발행 당일 해당 호는 매진되었고 주간지 사상 처음으로 3쇄를 찍었다. 보수 진영은 사자(死者) 모독과 국기 모독을 이유로 격렬히 반발하였으며, 일부 언론은 "만평이 아니라 사체 유기"라고 비난하였다. 유족회 내부에서도 반응이 갈렸다. 일부 유족은 "우리 아이를 다시 태웠다"며 항의하였고, 다수는 "우리가 차마 그리지 못한 것을 그렸다"며 작가를 지지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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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 | 카스티유는 발행 이후 다수의 살해 협박을 받아 넉 달간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았다. 검찰은 국기모독, 사자명예훼손,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그를 기소하였다. 1심은 국기모독 부분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하였으나 2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되었고, 2017년 6월 대법원이 이를 확정하며 다음과 같이 판시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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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7 | > 만평은 공적 인물의 권력 행사를 고발하기 위한 극적 표현이며, 그 수위가 다소 거칠더라도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의 범위 안에 있다. 표현이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표현을 금지할 수 있다면, 권력을 향한 비판은 권력이 허용하는 만큼만 존재하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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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9 | 이후 언론자유감시기구와 시민단체의 독립 조사는 이 사건 전체를 "국가가 특정 개인에 대해 정치적 린치를 가한 전형적 언론 조작 사례"로 결론지었다. 이는 루이나 헌정사상 최초로 언론사 4곳이 동시에 국가를 상대로 사전 검열 소송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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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1 | 「만찬은 계속된다」의 원화는 2021년 루이나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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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3 | === 결과 === | |
| 374 | 일련의 조작과 비방은 역설적으로 루스탈지아 그래이를 국민적 상징으로 부상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이후 대통령이 된 뒤 이 시기를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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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6 | > 정권은 나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나는 그날 무너지지 않은 시민들을 기억했다. |